열광과 회의의 교차로
메타버스가 “인터넷 2.0”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는 주장은 테크업계를 중심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가상현실(VR)·증강현실(AR)·블록체인 등 다양한 기술이 융합되어, 마치 실제 세계를 옮겨 놓은 듯한 온라인 공간을 구현한다는 비전이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결국 게임 엔진을 활용해 만든 가상공간에 불과하며, 혁신적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하다”라는 회의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열광과 의구심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메타버스라는 이름에 걸맞은 실질적 변화가 무엇인지 숙고할 시점이 도래했다.
MMORPG의 연장선: 메이플스토리·리니지·바람의 나라·GTA V
메타버스 개념이 폭발적으로 주목받기 전에도, 이미 메이플스토리나 리니지, 바람의 나라, GTA V와 같은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은 독자적 세계관과 경제 체계를 갖춘 온라인 플랫폼이었다. 캐릭터 육성과 아이템 거래, 커뮤니티 활동, 사용자 생성 콘텐츠 개발 등 현실 경제와 흡사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 게임은 메타버스의 초기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이 가상세계에서 통용되는 화폐나 상품을 현금화할 수 있는 ‘현거래’ 시장까지 생겨나면서, 현실 경제와 혼재된 새로운 생태계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현재 거대 기업들이 내세우는 메타버스 비전이 과거 MMORPG와 어떻게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같은 옷 다른 이름”에 그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경제활동의 대이동? 온라인 쇼핑과의 비교
메타버스 지지자들은 “가상현실 속에서 쇼핑, 업무, 교육을 포함한 모든 경제활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구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미 쿠팡이나 아마존 같은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우리는 대부분의 쇼핑을 온라인에서 해결하고 있다. 디지털 화폐나 토큰을 활용해 거래할 수 있다는 점도, 사실 신용카드나 페이 서비스가 이미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결국 “게임 스킨을 씌운 e커머스”가 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새로운 경제 생태계를 구현한다고 해도, 기존 온라인 쇼핑 방식과의 차별화가 뚜렷하지 않다면 메타버스가 혁신성을 담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플랫폼의 숙명: 집객과 그래픽의 유혹
모든 플랫폼은 사용자 유입이 확대되어야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이는 메타버스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게임 같은 그래픽’이 본질적인 재미나 혜택을 주지 못할 경우, 사용자들이 더 나은 그래픽·더 강력한 스토리를 갖춘 플랫폼으로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미 게이머들은 “무엇이 힙(hip)한지”에 따라 이동을 반복하며, 그 결과 살아남는 게임과 사장되는 게임이 극명하게 갈린다. 메타버스 역시 충분히 매력적이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면, 일시적인 열광 뒤에 빠르게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다.
진정한 몰입감의 조건: 기술 한계와 애플 비전 프로
진정한 ‘또 하나의 세계’로 거듭나려면 현실을 초월하는 몰입감을 제공해야 하는데, 현재 기술 수준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애플이 발표한 비전 프로조차 무거운 무게와 배터리 지속시간, 그리고 편의성 부족 등의 문제로 인해, 대다수 사람이 장시간 사용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드웨어 기술 혁신과 콘텐츠 최적화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메타버스는 머리에 무거운 기기를 쓰고 잠깐 시도하다가 꺼버리는 ‘체험형 놀이기구’에 그칠 위험이 있다. 몰입도 높은 시각·청각·촉각 기술이 필수적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메타의 오큘러스: 게임기 이상의 확장성?
메타버스 선두주자로 꼽히는 메타(구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역시 초기에는 SNS와 VR의 결합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게임기에 준하는 수준에서 활용도가 정체되고 있다. 이는 VR 기기가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콘텐츠 다양성·사용 편의성·가격 경쟁력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음을 의미한다. 본격적인 “디지털 세상”을 구현하려면 업무, 교육, 커뮤니케이션까지 아우르는 종합 생태계가 필요하지만, 각 요소가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않으면 단발적인 체험 상품이나 게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결국, VR 기반 플랫폼이 ‘일상’에 침투하려면 이용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극복하고, 실질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례가 축적되어야 한다.
‘메타버스’라는 이름에 걸맞은 혁신은 아직 요원
메이플스토리·리니지 등 과거 MMORPG가 이미 구축해 놓은 가상 세계의 DNA와, 현재 테크 기업들이 내세우는 메타버스 청사진 사이에는 기술과 문화의 격차가 존재한다. “디지털 경제활동”이라는 개념도 사실상 온라인 쇼핑이나 스트리밍 등으로 이미 오래전에 자리 잡았다. 현실을 뛰어넘는 몰입감과 상시적 연결성을 갖춘 세계를 만들려면, AR·VR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함께 콘텐츠부터 플랫폼 운영 방식까지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메타버스’가 게임 이상의 실체를 갖추려면 사용자가 느끼는 편의성과 재미, 그리고 경제적 이점 모두를 만족시키는 형태로 완성도 높은 생태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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